오디밭에서 일을 하다가 참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그만 대형 사고가 터져버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갈려고 농로를 타고가다가 그만 새로 콘크리트 작업하는 길을 잘못타서 차가 빠져버린것이다.
억울한 것은 콘크리트를 깔면서 입구에 아무런 표시도 없었고 콘크리트를 까는 거리가 길어 초입부분은 일반 콘크리트처럼 차가 아무 이상없이 지나가서 별생각없이 일반도로라 생각하고 달려가는데 수십미터를 가서 차가 조금씩 빠지는 느낌이 든 것이다.
아뿔싸~ 했지만 이미 늦은 것...
오디밭에서 일하고 있는 오여사에게 전화를 했지만 작업중엔 시끄럽기도해서 보통 전화받기가 쉽지가 않은 상황이라서인지 받지를 않는다.
하염없이 황당한 상황에 얼이 빠져있는데 퇴근하던 콘크리트 매설 아저씨들이 놀라면서 달려온다.
너댓명이 오더니만 차가 빠진 걱정은 없고 콘크리트를 내가 물어내야 한단다 ㅡ.ㅡ
순간 화딱지가 나서 그럼 내차 빠진건, 당신들 아무런 주의표시도 없는건 법적으로도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차 이거 고장나면 수리비는 어떻할꺼냐~ 했더니만 나몰라라 하고는 퇴근해버린다;;;
결국 증거자료로 필요할거같아 사진을 촬영하고는 저녁 늦게서야 동네분의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몇일 일을 계속해서 다시 손목이 뻐근하고 오여사는 밭일때문에 허리와 무릎이 아프다고해서 조금 일찍 나서서 한의원에 들리기로 했다.
서울에서도 어깨가 가끔 아파 어깨에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은적이 몇번 있어서 비슷하게 침맞고 치료받고 나올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아주 극악의 고통을 경험했다 ㅠㅠ
손목쪽이기때문에 손목아랫쪽으로 침을 맞았는데 오른손 손가락 다섯개의 손가락끝에 침을 놓는 것이다.
처음 엄지손가락에 침이 꽂히는데 누웠던 몸이 순간 벌떡 일어나지며 '어이쿠'하는 비명이 절로 나왔다.
(사실 이때 눈물도 찔끔 나왔던거같다 ㅠㅠ)
너무 아파서 원장님께 하나만 맞아도 되지않냐고 나이를 잊고 어리광을 피웠는데; 효과가 없다면서 꿋꿋이 다섯손가락에 침을 놓으셨고 나는 그때마다 죽어넘어갈듯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비비 꼬았다 -0-
순간 손톱밑을 바늘로 찔리는 고문을 당했다던 독립운동가분들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이 마음 깊숙이 생겨났다.
아무튼 치료를 마쳤는데 수업시작시간인 1시를 몇분 넘긴지라 부리나케 차를 몰아 기술센터 3층으로 향했다.
1교시로 귀농귀촌정책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늦은 관계로 듣지못한 부분도 있는데 들은 내용만 조금 정리하자면 아래 팜플렛 내용과 같다.
그리고 이어서 2교시로 조성욱과장님의 깨알같은 강의가 이어졌다.
농업의 기준으로 본 고창의 특징과 적절한 작물선택, 그리고 농업인으로써 기본적으로 관심갖아야할 사항(토양의 종류와 배수, 그밖에 보너스로 삽목에 대한 부분까지 실질적으로 농사를 하시면서 터득한 노하우와 이론들을 짧은 시간동안 알짜배기로 강의해주셨다.
쉬는 시간에 어떤 (미남인)교육생이 내 블로그를 봤다며 얘기를 시작했는데 우연스럽게도 체제형 둥지사업으로 첫번째 갔다가 좁아서 포기했던 화룡리 집에 본인이 살기로 결정했다가 아이들이 있어서 다른 넓은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귀농귀촌협의회 까페를 보다가 내 블로그주소를 보고 들어왔는데 본인들이 살기로 했었던 화룡리 집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잠시 쉬는 시간 짬을내 찾아왔단다.
얼핏 화룡리에 들른 다음날 이인석박사님을 통해 아이있는 젊은 부부가 들어오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은듯했는데 그게 바로 이 미남교육생이었던 것이다.
원래 분당에서 인터리어점을 운영했다고 하면서 집수리할때 불러만 주면 도와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인맥을 통해 정을 쌓고 서로 도움이 되는 모습들에 벌써부터 귀농한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34살로 나보다 5살이 적어 앞으로 자주 만나면서 호형호제하며 가깝게 지낼 수 있지않을까 싶다.
3교시에는 앞으로 진행할 수업과 실습과정에 대해 좀더 효율적인 운영이 되도록 인원을 4개조로 나누어 4개의 모듬을 짜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3모듬, 그리고 오여사는 4모듬으로 나뉘었다.
나뉜 모듬별로 개인별 소개의 시간을 갖고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귀농이라는 공동분모를 서로 이해하고 도움이 되는 유익한 시간을 갖았다.
내 왼편자리에는 이번 교육생중 최연소 교육생이 앉게 되었는데 귀농의 꿈을 갖고있던 남편에 의해 같이 청주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국악전공으로 판소리를 한다고 하는데 남편과 같이 활동하다가 갑자기 귀농을 하게되어 아직도 많이 얼떨떨하다고 하지만 이런 교육에까지 참여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니 여린모습과는 다르게 앞으로 잘 적응하게 될 것같다.
상하면과 가까운 공음면에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를 듣고 남자의 자격 귀농편 촬영을 상하면에서 하고있다고 얘기해주니 눈을 반짝이며 수첩에 메모를 한다.
마지막으로는 각 모듬별로 선출된 반장들과 4기학생회 임원진들의 인사와 각오를 듣고 첫수업은 마무리되었다.
완성도 되지않은채 공개한 블로그 덕으로 몇몇분이 먼저 알아보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좀더 블로그를 유익하게 꾸미도록 노력해야겠다.
마을회관은 잠깐 앞을 지나쳐보긴했지만 들어가보진 않았었다. 미지의 공간을 향하여 들어서자 동네어르신(대부분 할머니,아주머니)분들이 회관을 꽉채우고 우리를 쳐다보신다. 뻘쭘했지만 넉살좋은 오여사가 인사를 크게 하며 들어갔다.
아직 못뵈었던 어르신들도 많이 계셔서 새로 이사온 집이라고 소개를 드리니 잘왔다고 반겨주신다. 일년에 몇차례 명절때나 손주들을 만날터이니 그런 손주뻘인 우리들이 반가우신가보다. 그런데 오여사를 반겨주시면서 신랑은 어디있느냐고 찾으신다. 신랑은 바로 옆에 있지않냐고 하니 누가 색시냐고 물으신다. 뒤돌아 앉아있는대라 긴머리에 퍼머를 한 내 모습은 딱 동네아줌마 포스이다;;; 어쨋던 그렇게 회관이 한바탕 웃음으로 꽉찼다.
우리전에 인촌마을로 이사오신 분이 큰통에 하나가득 반죽을 해오셔서 어르신분들께 대접해드리고 있었다. 마을주변에서 바로 따온 신선한 부추나 미나리등이 들어가있어 건강에도 좋고 맛또한 최고다.
안타깝지만 전을 먹을땐 손이 온통 기름범벅이라 사진촬영을 하지 못하고 이후 간식시간에 한장면을 담았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절에 다녀오신 분들이 떡이며 과자등을 풀어놓은것이다.
마을전체 나들이가 내일 있을 예정인데 회비외에 놀러갈때 먹을 떡비용을 지원했다. 원래 이사와서 떡을 한번 돌리며 인사를 드릴 생각이었는데 마침 놀러가는날 떡을 한다고해서 겸사겸사 소개도 될겸해서 떡값을 냈다.
곧이어 윷놀이가 벌어졌다. 두패로 나뉘었는데 오여사가 붙은쪽이 그래도 젊은 쪽이라 시끌시끌했다. 사진의 우측에 파란셔츠에 붉은장미몸빼의 포스넘치는 분이 이장님 아주머님이시다.
나는 조금 구경하다가 집앞에 묶어놓고 나온 콩이 녀석이 너무 짖어대 먼저 일어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사진은 못찍었는데 오후에 다시 한번 대장님댁에서 모임이 있었다. 아주머님 몇분이서 모여 보리밥을 비벼 드신다고 먹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워낙에 대장님 댁에서 이런 모임이 잦아서 왠지 이쪽이 마을회관이지않을까 생각이 든다.^^